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임경화 번역 | 알에이치코리아 출판 | 일본 소설 | 추리/미스터리/스릴러
소설 '회랑정 살인사건'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된 리뷰입니다.
한 맺힌 여자의 복수극을 그린 정통 추리소설
소설 '회랑정 살인사건'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1991년 발표한, 제법 오래된 소설입니다. 그래서 범행수법이나 배경이 살짝 올드한 느낌이 나긴 하네요. 32살의 여성이 70세 노파로 변장한다는 무리수 설정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전체적인 플롯과 이야기 자체의 흡입력은 상당합니다. 덕분에 저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고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사랑하는 애인의 죽음
주인공 기리유 에리코는 한때 사장의 측근 비서였던 32세 여성입니다.
그녀의 상사는 무척 이성적이고 냉철한 사람으로, 그녀를 깊이 신뢰하여 결혼도 고려했죠.
그러나 주인공은 그런 삶을 거부합니다.
사장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제대로 사랑받고 싶었거든요. 기리유의 상사는 그녀의 인간적인 매력과 뛰어난 능력을 높이 평가했지만 하나의 여성으로서 사랑한 건 아니었어요.
그런 주인공에게도 운명 같은 사랑이 찾아옵니다.
상대는 '사토나카 지로'라는 남자로, 사장의 숨겨진 친아들입니다. 과거 사장이 잠시 사귀었던 여성이 낳은 아들이었어요.
그녀는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 채 낳았고, 불행한 가정사로 인해 그 아이는 고아로 자라게 됩니다. 아이의 어머니는 죽기 직전에야 그 사실을 아이의 아버지에게 알렸어요.
사장은 신뢰하는 비서에게 자신의 아들을 찾으라는 임무를 내리죠. 그는 현재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그 아들이 유일한 후계자였거든요. 그 지시에 따라 주인공은 고아로 고단하게 살아온 '사토나카 지로'라는 사장의 아들을 찾아냈고, 그와 사랑에 빠지고 만 겁니다. 평생 단 한 번일 것만 같은 진실한 사랑이었죠.
사실 주인공은 남자들에게 인기 없는 굉장히 못생긴 여성이었어요. '사토나카 지로'는 그런 그녀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해 준 단 하나의 남자였습니다. 선량하고 순수한 남자. 기리유는 그와의 행복한 미래를 꿈꿉니다.
그러나 '회랑정'이라는 고급 여관에서 사장에게 '사토나카 지로'를 소개하려고 했던 그날, 그녀와 남자 친구가 머물고 있던 방에 큰 화재가 나 사토나카 지로는 죽고 말았습니다. 누군가 사장의 유일한 아들이자 후계자였던 '사토나카 지로'를 제거하려 했고, 성공한 겁니다. 그녀 역시 범인에 의해 죽을 뻔했지만 가까스로 목숨을 건져요.
범인에게 목 졸려 살해당할 뻔했다는 충격, 화상으로 인한 흉측한 외모,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주인공은 이 모든 고통을 복수심이라는 목표 하나만을 생각하며 이겨냅니다.
먼저 기리유 에리코는 자살한 것으로 처리해요. 그리고 '혼마 기쿠요'라는 70세 할머니의 신분을 빌려 복수를 계획하기 시작합니다.
복수의 시작
복수의 무대는 다시, '회랑정'입니다.
'회랑정'은 남자 친구가 화재로 목숨을 잃은 바로 그 고급 여관이죠. 그녀의 상사는 친아들의 정체를 모른 채 죽어버렸어요. 그의 유언장을 '회랑정'에서 공개하기로 했기 때문에, 사장의 친인척들이 모두 모여있습니다. 그리고 이 중 그녀의 애인을 죽인 범인이 있어요.
주인공은 범인을 잡기 위한 함정을 팝니다. 범인에게는 공범도 있을 것이라 추측됩니다. 주인공은 과연 복수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반전, 그리고 비극적인 결말
결론부터 말하자면, 주인공은 복수에 성공합니다.
주인공 기리유 에리코는 사토나카 지로를 죽인 범인과 그 공범을 찾아내고, 확실하게 복수하며 비극적인 엔딩을 맞이합니다. 그 과정이 상당히 아슬아슬하고 드라마틱해서 손에 땀을 쥐고 봤어요.
독자들의 뒤통수를 치는 반전도 있는데, 그렇다고 뜬금없거나 납득할 수 없는 반전은 아닙니다. 복선과 힌트는 충분하거든요. 글을 읽으면서 '이 부분은 뭔가 이상한데. 이거 모순 아닌가?'싶은 부분을 잘 파고들면 반전도 알아차릴 수 있어요.
정통 추리 소설인만큼, 히가시노 게이고가 파 놓은 함정을 피하면서 동시에 그가 뿌려놓은 떡밥을 단서로 추리해 나가는 즐거움이 기대 이상입니다.
한편으로는 주인공 기리유 에리코의 기구한 인생이 너무나 가슴 아프더라고요. 범인에게 복수하고 제2의 인생을 살 방법도 충분히 찾을 수 있었을 텐데. 그녀가 굳이 그러지 않은 건, 배신당한 아픔이 뼈에 사무쳐 새롭게 시작할 기력이 없었던 거라고 납득할 수밖에요.
여러모로 쌉쌀한 뒷맛이 남은, 그러나 추리하는 재미는 남달랐던 '회랑정 살인사건'의 리뷰를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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