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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티키타카 통통 튀는 유쾌한 코지 미스터리 ⟪세련되게 해결해 드립니다, 백조 세탁소⟫ 북 리뷰 (feat. 스포일러 있음, 독서감상문)

by 삶의파편 2022. 11. 18.

세련되게해결해드립니다백조세탁소책표지

이재인 저자 | 안전가옥 출판 | 한국 소설 | 코지 미스터리

 

코지 미스터리란 범죄/미스터리/추리물의 하위 개념으로, 가볍고 편안한 분위기의 일상 미스터리를 다룬 글입니다. 심각하고 끔찍한 폭력 사건을 풀어내는 하드보일드 미스터리와 대비되는 장르라 할 수 있죠. 주로 소도시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평범하고 소소한 사건을 아마추어 탐정이 해결하는 플롯을 가지고 있어요.

 

전 일본 및 영미권의 코지 미스터리는 많이 접해봤어요. 그렇지만 우리나라 미스터리 작품은 무겁고 우울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물론 제가 책을 열심히 읽기 시작한 건 최근 몇 달의 짧은 기간인 만큼, 우리나라 코지 미스터리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래서 이 작품을 만나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요즘 읽고 있는 장편 미스터리가 무척 우울한 내용이라서 머리를 식히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제 기대대로, 적당히 유쾌하고 밝고 따뜻한 내용의 코지 미스터리였습니다. 배경이 우리나라 여수라 반갑기도 하고, 드라마 대본을 읽는 것처럼 생동감 넘치는 대화가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개인적으로 드라마로 각색하면 정말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글이었습니다.

 

⟪세련되게 해결해 드립니다, 백조 세탁소⟫ 줄거리 및 감상

⟪세련되게 해결해 드립니다, 백조 세탁소⟫라는 재미난 제목을 지닌 이 소설의 주인공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 백조 세탁소의 주인장입니다.

이리 말하면 연세 지긋한 어르신이 떠오를 거예요. 그러나 이 세탁소의 주인은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할 예정이었던 20대 젊은 아가씨 '백은조'입니다. 왜 졸업할 예정이었다고 표현하느냐, 다니던 대학이 갑자기 폐교되는 바람에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낙후하고 촌스러운 고향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일념에 서울로 상경했지만, 막상 졸업장도 얻지 못한 채 여수로 낙향하게 된 은조는 심사가 뒤틀려 있습니다. 멋진 패션 디자이너로 성공하고 싶었건만, 현실은 재능과 실력이 뛰어난 해외 유학파에 밀려 취업조차 못한 패배자가 되어버린 자신이었죠.

 

어쨌든 먹고살아야 하니 부모님이 경영하던 세탁소를 물려받아 일을 시작합니다. 지난 몇 년간 대학에서 배운 것이 헛되지는 않아서, 뛰어난 눈썰미와 손재주로 손님들의 옷을 수선하는 등 자기 재능을 발휘하죠. 그런데 그 눈썰미가 옷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게 문제입니다. 

 

오지라퍼처럼 남의 일에 이러쿵저러쿵 떠들고 간섭하는 건 딱 질색인 은조이지만, 뛰어난 눈썰미와 추리 감각으로 심각한 범죄의 징후를 포착해 낸 이상 모른 척할 수는 없습니다. 귀찮은 일에 연루되고 싶지는 않고, 그러나 해결은 해야 하고. 이럴 때 필요한 건 역시 경찰 인맥 아니겠어요.

 

한편, '이정도'는 한때 서울에서 마약 범죄 수사를 하던 광수대 에이스였지만, 어쩐 일인지 여수까지 밀려나게 된 형사입니다.

나름 경찰대 수석 입학에 수석 졸업한 엘리트인데, 이놈의 촌구석 어찌나 외지인에게 폐쇄적이고 경계심이 많은지 모릅니다. 다시 서울로 돌아가려면 빨리 많은 실적을 쌓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현지 사정을 잘 아는 토박이의 도움이 필요해요.

 

결국 정도와 은조는 둘 다 본의 아닌 파트너십을 맺고 공조하게 됩니다. 첫인상은 나빴지만 결과가 좋으면 꼴 보기 싫던 파트너도 예뻐 보이는 게 사람 마음 아니겠어요. 또 비슷한 나이대의 남녀가 서로 협력하며 상대방의 능력에 감탄할 일이 생기는 셈이니까, 정이 들 수밖에 없지요.

 

사실 은조는 자신의 고향도, 부모도, 동네 이웃들도 부끄럽고 싫었습니다.

그래서 고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토록 발버둥 쳤건만, 결국 실패하고 그토록 스스로가 낮춰보았던 동네에서 얕보던 동네 사람들과 부모의 도움 하에 세탁소를 운영하게 된 거예요.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자존심 상하고 인정하기 싫은 현실이지만, 자기 성장이라는 게 원래 고통스러운 자기 객관화를 거쳐야 이뤄지는 법입니다. 무엇보다 은조 본인이 그토록 싫어했던 고향은 사실 은조의 뿌리이고, 정체성이고, 유년의 추억을 간직한 소중한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이 소설은 코지 미스터리이면서 동시에 주인공 백은조의 성장 스토리이기도 합니다.

오지랖 넓고 험담 쩌는 동네 사람들과 마찰이 잦지만, 인간관계가 늘 그렇듯 나쁜 일만 있는 건 아니에요.

 

섭섭한 마음에, 혹은 솔직하지 못해 독설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다가도, 또 위로하고 돕는 것이 인간관계의 단짠 포인트니까요. 물론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솔직하게 사과하고, 상대방을 진심으로 배려하는 태도가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요.

 

은조는 바다가 아름다운 고향 여수에 내려와, 수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과거를 돌아봅니다. 서투르고 멍청하고 솔직하지 못하고 한심했던 스스로를.

 

그런 자기 자신의 모자란 모습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나자, 오히려 긍정적으로 새롭게 출발할 용기가 생깁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마음에 들게끔 자신을 성장시키고 발전해 나가면 됩니다.

 

그리고 은조는 모자라기만 한 사람은 아니에요. 모든 사람이 그렇듯, 단점이 많지만 장점 또한 많다는 거죠. 은조는 그 사실을 주변 동네 이웃들과 오랜 절친이었던 세은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좁은 시야에 갇혀 자신에게 없는 허상을 쫓다가, 정작 자신의 진짜 장점을 놓치고 있었던 거예요.

 

결국 은조는 결심합니다.

소중한 고향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자고. 낙후되어 스러져 가는 고향 마을을 부활시키자고.

 

이야기 초반의 은조와 후반의 은조는 같으면서도 참 다른 인물입니다. 다양한 사건사고를 해결하고, 동네 사람들과 치고받고 정을 나누며 한 단계 성장한 게 눈에 보인달까요. 

 

이런 은조의 대척점에 서 있는 게 '커피홀릭'이라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자기 자신의 본모습을 인정할 수 없어 거짓말로 포장하고, 사기 치고, 결국 반성도 깨달음도 없이 막다른 길까지 달려가 버리고 말죠.

 

개인적으로 백은조의 차근차근 단계별 성장 과정이 무척 인상 깊고 흐뭇했습니다.

현실적이면서도 판타지 양념 한 스푼이 가미된듯한 따뜻한 이야기랄까요.ㅋㅋ 동네 주민들을 짜증스러워하면서도 또 마냥 매몰차게 대하지 못하는 은조에게 공감하며 마지막까지 달릴 수 있었습니다.

 

은조의 새로운 도전이 성공하게 될지, 또 다른 실패로 귀결될지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긍정하고, 동기들과 똘똘 뭉쳐 새로이 출발하는 은조의 모습에서 행복한 활력이 느껴져서 좋더라고요.

 

이 글의 또 다른 장점은, 팔딱팔딱 생동감 넘치는, 살아있는 대화입니다.

사실 소설 속 대화 장면을 실제 말로 내뱉는다 생각하면 어색한 경우가 많아요. 지나치게 문장이 길거나, 현학적이고 문학적인 표현이거나, 딱딱한 표현이거나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요. 독자인 우리는 그걸 문어체의 특성이려니 하고 납득해 주곤 합니다.

 

그런데 이 소설 속의 대화는 정말 현실감이 넘쳐서, 읽다 보면 자동으로 옆에서 음성 재생이 되는 듯한 기분이 들더라고요.ㅋㅋ 사투리도 찰지고, 말을 주고받는 티키타카가 통통 튀는 게 정말 재미있습니다. 꼭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위와 같은 여러 가지 이유로 무척 재미있게 읽은 글인 데다, 아직 제대로 풀리지 않은 떡밥과 소재가 많이 남아서 다음 시리즈를 기대하게 됩니다.

이정도 형사가 왜 여수에 내려오게 된 것인지, 냄새만 솔솔 풍기고 제대로 썰을 풀지 않았잖아요. 또 이정도 형사와 은조의 관계도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죠.ㅋㅋ

 

은조와 학교 동기들, 동네 이웃들의 새로운 도전에 대해서도 할 이야기가 많을 테고요. 또 그들의 계획대로라면 관광객과 외지인도 많이 늘어날 테니, 동네의 사건사고도 더 늘어날 것이고! 

 

그러니까 제발 이재인 작가님이 다음 시리즈도 써 주셨으면 좋겠다, 뭐 그런 희망을 담아 적어보는 리뷰입니다. 또 우리나라에서도 이처럼 유쾌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코지 미스터리가 많이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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