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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히가시노 게이고 ⟨녹나무의 파수꾼⟩ 북 리뷰 (ft. 스포일러 있음)

by 삶의파편 2022. 11. 8.

히가시노게이고-녹나무의파수꾼-책표지
이미지출처-교보문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양윤옥 번역 | 소미미디어 출판 | 일본 소설

 

소설 '녹나무의 파수꾼'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된 리뷰입니다.

 

불운한 청년에게 찾아온 새로운 기회

이 소설의 주인공은 '나오이 레이토'라는 젊은 청년입니다.

그의 삶은 불운했습니다. 그는 아버지 없는 사생아였고, 그나마 있던 어머니조차 어린 나이에 잃었어요. 할머니의 보살핌이 있었지만 가난한 형편이라 어린 나이에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습니다.

 

부모 없는 어린 청년에게 사회는 가혹했습니다. 가까스로 얻은 직장에서는 착취당하고, 부당한 누명을 쓰고, 한편으로는 본인 스스로 어리석은 실수를 저질렀어요. 그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줄 만한 어른이 없었거든요.

 

결국 그는 감정에 휘둘려 절도를 저지르다 경찰에 잡히고 맙니다.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겠다 싶던 그때, 그를 위기에서 구해줄 사람이 나타납니다. 자신에게 있는 줄도 몰랐던 이모.

 

이모 '치후네'는 어머니의 배 다른 자매였습니다. 유서 깊은 명문가 사람으로 깐깐하고 엄격한 성격의 부자 이모. 그녀는 자신의 조카 나오이 레이토에게 제안합니다. 네가 녹나무의 파수꾼이 되어 준다면 너를 감옥에서 꺼내 주겠다고.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에 얽힌 미스터리

엄격한 이모의 지도 아래, 주인공은 녹나무 파수꾼으로서 새 인생을 시작합니다.

낡은 신사를 관리하며 녹나무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그 나무를 지키는 게 그의 임무였어요. 그런데 일반적인 관광객과 달리, 밤에만 찾아오는 특별한 손님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꼭 사전예약을 하고 찾아와 무언가를 간절히 기원하고 가곤 했죠. 나오이는 그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 건지 궁금했지만, 이모는 파수꾼으로서 네 스스로 알아내고 배워야 할 일이라며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갑작스러운 침입자

그러던 어느 밤, 신사에 한 침입자가 찾아옵니다. 수상쩍게 행동하는 아버지를 미행한 '사지 유미'라는 이름의 딸이었죠. 그녀는 아버지가 이상하게 행동하는 연유를 알아내야겠다며 나오이에게 협조를 요청합니다. 나오이는 가까스로 얻은 직장에서 잘릴까 봐 이를 거절하지만, 사실 본인도 녹나무의 비밀이 궁금했던 데다 유미에 대한 호감도 있어 결국 그녀의 요청에 응하게 됩니다. 

 

'기념'의 의미와 나오이 레이토의 성장

밤에 찾아오는 특별한 손님들의 목적은 '기념'을 하는 것입니다.

이 '기념' 의식에는 일정한 절차와 규칙이 있으며, 일반적인 의미의 소원빌기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나오이는 알아챕니다. 그리고 결국 사지 유미와 함께 그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데 성공하죠.

 

'기념'이란 녹나무를 매개로 하여, 한 사람의 생각을 다른 이에게 텔레파시처럼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 오직 혈육 사이에만 가능한 일이며, 주로 유언을 자식들에게 전달할 때 사용되곤 합니다. 그것은 사랑일 수도 있고, 훌륭한 가르침일 수도 있으며, 가문의 비밀일 수도 있죠. 

 

분명한 건, 현대의 그 어떤 소통방법도 이 기념만큼 진실하고 정확할 수 없다는 겁니다.

내 생각을 날것 그대로 전달한다는 건 불가능해요.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적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말, 글, 그림, 음악, 영상 등 다양한 수단을 사용하지만, 모두 2차 가공을 거치며 본연의 의미가 왜곡되곤 합니다. 

 

그렇기에 '기념'은 무척 유용하면서도 무서운 양날의 칼입니다. 

상상해 보세요. 자기 머릿속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꺼내 보이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누구에게나 훌륭하고 아름다운 생각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동시에 부끄럽고, 불순하고, 끔찍하고, 불쾌한 생각들도 많이 섞여 있어요. 녹나무는 이러한 생각 모두를 선택의 여지없이, 걸러내지 않고 그대로 전달합니다.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복잡하고 애매한 마음을 오해 없이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자신의 치부를 전부 내보이게 된다는 단점도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정말 용기 있고 스스로에 대해 자신이 있는 사람만이 '기념' 의식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사지 유미'와 그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유미의 큰아버지와 할머니의 과거사까지 이어집니다. 지난 인생에 대한 회한, 사랑하는 사람을 상처 입힌 것에 대한 사죄를 따뜻하고 감동적인 방식으로 전달합니다.

 

한편 '오바 소키'라는 청년도 있습니다. 유명한 화과자점의 후계자이지만, 그 나름의 심각한 이유로 방황 중입니다. 주인공 나오이는 사지 유미의 일을 해결하는 동시에, 오바 소키의 고민도 녹나무 파수꾼으로서 훌륭하게 처리합니다.

 

이모 치후네와의 만남이 나오이 인생의 전환점이었어요.

소설 초반의 나오이는 제대로 세공하지 않은 원석 같은 존재였습니다. 불우한 환경에서 제대로 된 어른의 지도를 받지 못한 채 자라, 자기 인생을 막다른 길로 몰고 갔죠. 

 

엄격한 이모 치후네는 그런 나오이에게 훌륭한 롤 모델이자 인생의 스승이 되어줍니다. 이모는 그녀 나름대로, 자신의 이복 여동생과 그 아들이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 돕지 않았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더더욱 나오이를 옳은 길로 이끌기 위해 노력합니다. 

 

나오이의 성장

녹나무 파수꾼을 하며 나오이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사연을 바로 곁에서 보고 들으며 도와주고 해결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되죠.

 

정말 다행인 건 나오이가 본바탕이 선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동안 성장할 기회가 없었을 뿐, 기회가 주어지자 그는 배움을 양분 삼아 쑥쑥 뻗어나가거든요. 이모 치후네와 나오이의 상호작용이 얼마나 따뜻하고 포근했는지 모릅니다. 

 

선한 인간성에 대한 믿음

'녹나무의 파수꾼'은 전반적으로 잔잔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나오이 성장소설입니다.

추리, 미스터리 요소가 있고 판타지적인 설정도 아주 조금 있지만, 결국 선한 인간성에 바탕을 둔 감동적인 휴먼 스토리라고 할 수 있어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좋아하신다면 이 소설도 추천드립니다. 무려 556페이지에 달하는 장편인데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더라고요.(물론 재미로만 따지면 전 '나미야~' 쪽을 훨씬 높게 평가합니다만)

 

'녹나무 파수꾼' 속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사를 보며, 저 또한 제 인생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점검하게 되더라고요. 나는 과연 사지 유미의 큰아버지와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을까, 하고. 또 오바 소키처럼 본질을 보지 못하고 중요하지 않은 허상에 매달린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상 따뜻한 여운을 남기는 소설 '녹나무의 파수꾼'에 대한 리뷰를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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