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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그녀는 카페오레 꿈을 꾼다,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 수첩 2⟫ 책 리뷰 (ft. 스포일러 있음, 일상/코지 미스터리 추천)

by 삶의파편 2022. 11. 25.

커피점탈레랑의사건수첩2책표지여주인공서빙모습
출처-교보문고

오카자키 다쿠마 지음 | 양윤옥 번역 | 소미미디어 출판 | 일본 소설 | 미스터리/스릴러

 

커피 향 가득한 일상 미스터리 시리즈, 그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이번 시리즈의 테마는 '가족'이라고 할 수 있어요. 훌륭한 바리스타이자 탐정인 기리마 미호시의 여동생 미소라가 등장하고, 그들의 아버지와 관련된 비극적인 가족사가 밝혀집니다. 그러나 선악을 뚜렷이 구분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글인 만큼, 마무리는 훈훈하네요.

 

가족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

가족이란 무엇일까요.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가까우면서도 멀고, 애틋하면서도 짜증스럽고, 편하면서도 어려운 관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두 번째 시리즈에서는,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미소라의 아버지 찾아 삼만리'라는 큰 주제가 있는 한편으로, 커피점 탈레랑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얽힌 다양한 사연에 대한 미호시 바리스타의 추리가 펼쳐집니다. 제3장의 '유백색 하트를 망가뜨리다' 외에는 모두 가족에 대한 이야기네요.

 

편안하고 잔잔한 일상 미스터리를 표방하고 있는 작품이지만, 의외로 이번 이야기는 나름 스펙터클한 추격전과 충격적인 가족사가 나와요. 개인적으로는 첫 번째 시리즈보다 훨씬 재미있더라고요.

 

미소라의 아버지 찾아 삼만리

여주인공 기리마 미호시에게는 '미소라'라는 여동생이 있습니다. 조용하고 차분하며 어른스러운 미호시와 달리, 활발한 말괄량이로 괄괄한 성격의 소유자죠. 한마디로 정반대 스타일이에요. 의외로 형제 자매지간에 이런 경우가 많죠. 

 

교토에 놀러 온 미소라는 미호시, 아오야마와 함께 유명 관광지를 돌아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그런데 사실 그녀는 관광을 목적으로 교토에 온 것이 아니었어요. 

 

미호시와 미소라에게는 분명 부모님이 계시지만, 사실 현재 아버지는 두 자매의 친아버지가 아닙니다. 워낙 어린 시절의 일이라 희미한 기억으로 남아있을 뿐이지만, 미호시는 자신이 두 살 무렵 친아버지와 어머니가 헤어졌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부모님은 어째서인지 이 사실을 두 자매에게 철저히 비밀로 숨겨왔어요.

 

미소라는 어머니가 숨겨둔 신문기사를 통해 친아버지의 정체를 추리해 냅니다. 오래전 표절 사건을 일으켜 사회적으로 매장당한 추리소설 작가였어요. 현재 찌라시 잡지의 글을 써 주는 일을 하며 근근이 연명하는 비참한 삶을 살고 있죠.

 

미소라는 언니 미호시에게조차 이 사실을 비밀로 한 채 이 작가에게 접근합니다. 피가 통하는, 진정한 혈육인 친아버지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친애의 정을 기대하면서요. 그러나 과연 그는 친아버지가 맞을까요?

 

친아버지를 찾고 싶은 열망 때문에 진실을 보지 못하는 동생 미소라와 달리, 미호시는 총명하고 날카로운 이성으로 그 작가의 정체를 꿰뚫어 봅니다. 그러나 여동생은 이미 함정에 빠진 뒤였죠. 이제 미호시는 모카와 영감님, 아오야마와 함께 미소라를 위험에서 구해내야 합니다.

 

납치된 미소라를 구출하는 과정이 긴박하고 긴장감 있게 전개되어 손에 땀을 쥐고 보게 되는 데다, 미호시가 숨기고 있던 반전 같은 비밀도 먹먹한 감동을 줍니다. 그녀의 카페오레 꿈은 비극이지만, 한편으로는 하늘의 빛나는 별처럼 진정하고 소중한 사랑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해 주니까요.

 

복잡 미묘한 형제자매 사이

가족이란 참으로 묘합니다. 그 어떤 타인보다 가까운 존재이지만, 한편으로는 어렵고 먼 관계예요. 

 

미호시는 오래전부터 꾸어 온 카페오레 꿈을 끝까지 미소라에게 솔직하게 고백하지 못해요. 어머니가 친아버지의 존재를 자매에게 철저히 함구해온 이유 또한, 딸들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정말 사랑하기에 결코 솔직할 수 없다는 아이러니가 존재하는 거예요.

 

한편으로, 미호시는 미소라에게, 미소라는 미호시에게 열등감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이 재미있죠. 저는 그것이 나쁜 게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경쟁구도에 놓이게 된 형제자매 사이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서로 무척 닮았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비슷하죠.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면서도 미워할 수밖에 없고, 열등감 때문에 솔직해지지 못하는 측면도 있어요.

 

이런 자매간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섬세하면서도 공감할 수 있게, 설득력 있게 보여주어서 감탄했습니다. 1권에 비해 이야기 전개나 서술방식 등, 모든 면에서 작가의 실력이 일취월장했다고 느꼈어요. 물론 1권도 신인작가의 데뷔작임을 고려하면, 아이디어가 참신하고 일상 미스터리 수수께끼를 푸는 과정도 소소하게 재미있긴 했지만.

 

느리지만 한 걸음씩 나아가는 로맨스

아오야마와 미호시 바리스타의 관계는 여전히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이라는 애매한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1권에 나온 기리마 미호시의 스토커 트라우마 때문은 아니고, 아오야마의 우유부단하고 조심스러운 태도가 원인입니다.

 

사실 아오야마가 고백하면 미호시는 당장 흔쾌히 받아들일 게 분명해요.

그 정도로 두 사람의 서로에 대한 호감은 확실합니다. 그래서 독자인 제 입장에서는 아오야마의 머뭇거림이 짜증스럽기도 했어요. 미호시 또한 그러한 그의 태도를 은근슬쩍 질책하면서도, 또 인내심 있게 기다려주는 걸 보면 그만큼 아오야마를 좋아하니 그런 거겠죠.

 

어찌 보면 요즘 같은 시대에 보기 드문 형태의 로맨스입니다. 둘 다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인 데다 교류한 지 1년이 지난 친밀한 관계임에도, 서로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고풍스러운 느낌이 있어요.ㅋㅋ 1년 넘게 썸이라니 이게 무슨 일이냐 머리를 싸매고 싶은 심정이지만, 한편으론 아오야마의 조심스러운 태도가 이해가 되긴 해요. 

 

왜냐하면 둘의 관계가 더할 나위 없이 이상적인 상태였거든요.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감.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깊이 관여하거나 간섭하지 않지만,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서로 돕는, 추한 모습 보일 일 없는 아름다운 인간관계랄까요.

 

아오야마는 고백을 망설이는 이유에 대해 아직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건 어디까지나 제 추측에 불과합니다.

 

아마도 아오야마는 미호시에게 고백해 깊은 관계로 발전했다가, 오히려 좋은 친구와 커피(!)를 잃어버리는 결말을 맞이할까 봐 두려운 게 아닐까 싶습니다. 남녀관계란 언제 어떻게 파투 나도 이상하지 않으니, 그런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오래가는 우정을 선택하고 싶은 기분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이번 이야기를 통해, 아오야마는 미호시의 비극적인 가족사 한복판에 깊숙이 관여하게 되었어요. 미호시는 자신의 가족에게조차 털어놓을 수 없는 복잡한 심경을 아오야마에게 솔직히 고백합니다. 이런 깊은 감정의 공유가 두 사람의 관계를 한층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고 저는 생각해요. 게다가 서로 귀여운 오해와 질투까지 하고 말이죠.ㅋㅋ

 

게다가, 이것도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저는 이미 이루어진 연인 관계는 어쩐지 김 빠진 사이다 같은 느낌이라서, 이렇듯 아슬아슬 이루어질 듯 말듯한 썸남썸녀 관계도 나쁘지 않더라고요. 어차피 이 소설의 주 묘미는 일상 수수께끼 풀이이고, 로맨스는 양념 같은 느낌이니까요.

 

작가 오카자키 다쿠마는 교토대 법대 출신이자 사찰 집안 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을 자랑합니다. 뮤지션을 목표로 음악활동을 한 적도 있고요. 이런 본인의 경험을 미소라를 비롯한 여러 캐릭터와 스토리에 잘 녹여낸 것으로 보이네요.

 

세 번째 작품은 지금까지와 분위기가 다른 이야기에 도전하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작가입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도 계속해서 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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