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자키 다쿠마 지음 |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출판 | 일본 소설 | 미스터리/스릴러
1권보다는 2권이 낫고, 2권보다는 3권이 나은, 점점 재미있어지는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 수첩⟫ 3번째 시리즈입니다. 기존 1, 2권은 옛 도읍 교토의 고풍스러운 커피점 탈레랑을 배경으로 하여, 다양한 손님들의 일상 속 수수께끼를 푸는 형식이었죠.
그러나 이번 3권은 커피점 탈레랑이 아닌 '간사이 바리스타 대회(KBC, Kansai Barista Competition)'가 중심 무대입니다.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 여러 바리스타 사이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공방전과 비열한 술수, 이 술수의 트릭을 풀어내는 미호시 바리스타의 활약을 그리고 있습니다.
다양한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어 단편 모음집 같은 느낌이던 기존 시리즈와 확실히 달라요. 하나의 일관된 주제를 지닌 장편소설 느낌이랄까, 이야기의 호흡이 길어졌어요. 저는 단편보다 장편 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변화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등장인물 간의 드라마틱한 사연과 이를 풀어나가는 방식도 좋았고요. 그래서 1, 2권보다 더 높은 점수를 주게 되네요.
간사이 바리스타 대회에 참가한 기리마 미호시
기리마 미호시는 제5회 '간사이 바리스타 대회', 줄여서 KBC에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결선에 진출한 바리스타는 총 6명으로, 각자의 명예를 걸고 승부를 겨루어, 우승하면 50만 엔의 상금과 함께 이탈리아 연수여행을 갈 수 있는 특권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가장 큰 이득은, 가장 뛰어난 바리스타라는 명예를 얻어 자신의 커피점을 홍보할 기회를 얻게 된다는 거죠.
만약 기리마 미호시가 우승하게 되면 단골손님 위주로 운영되던 소규모 커피점 탈레랑에 큰 도움이 될 거예요. 물론 커피에 진심인 미호시는 보다 순수한 의도로 출전한 것이지만요.
바리스타들은 각자 에스프레소, 커피 칵테일, 라테아트, 드립 커피 등 다양한 종목에서 고르게 높은 점수를 득점해야 종합 우승을 차지할 수 있어요.
6명의 바리스타와 비열한 술수
그런데 이 대회는 도무지 수월하게 진행되지 않습니다. 첫 번째 에스프레소 종목에서부터 한 참가자의 커피 원두가 바꿔치기되는 불상사가 일어나더니, 두 번째 커피 칵테일 종목에서 소금이 위장약으로 바뀌는 등, 경쟁자를 밀어내기 위한 치사한 술수가 난무합니다.
결국 세 번째 라테아트 종목에서도 참가자의 우유에 문제가 생기면서, 바리스타들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불신과 불화가 생기게 되죠.
이제 기리마 미호시는 대회 우승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커피에 비열한 장난질을 치는 범인을 잡기 위해 총명한 두뇌를 풀가동합니다. 그 과정에서 아오야마가 탐정의 조수 노릇을 톡톡히 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요. 물론 미호시가 셜록이라면 아오야마는 왓슨이니, 항상 헛다리를 짚는 건 여전합니다만.ㅋㅋ
기리마 미호시의 경쟁자 출현과 그로 인한 긴장감
그동안 남주 아오야마에게는 기리마 미호시의 드립 커피야말로 최상의 것이었습니다. 그에게 있어 최고의 바리스타는 커피점 탈레랑의 기리마 미호시죠.
그러나 이번 대회에는 미호시 못지않게 커피에 대한 애정과 재능이 넘쳐나는 경쟁자들이 여럿 등장합니다. 드립 커피가 미호시의 장기라면, 다른 바리스타들 또한 에스프레소, 라테아트, 커피 칵테일 등 저마다의 특기가 있는 거예요.
저 또한 당연히 미호시가 우승이겠지, 생각하고 있다가 강력한 우승 후보들이 많아서 긴장하게 되더라고요. 결국 미호시는 우승을 차지하지는 못해요. 그러나 그녀의 장기는 커피만이 아니죠. 추리능력만큼은 그녀를 따를 자가 없다는 게 증명됩니다.
다양한 트릭을 푸는 재미와 드라마틱한 과거의 진상
커피 원두, 소금, 우유 등 참가자들의 재료를 바꿔치기한 트릭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재미있기도 했거니와, 그러한 일이 생기게 된 과거의 사연 또한 인상적입니다.
마음을 미혹에 빠뜨리는 블렌드
이번 시리즈의 부제가 '마음을 미혹에 빠뜨리는 블렌드'인데, 이야기를 다 읽고 나니 정말 절묘하게 잘 붙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리마 미호시는 커피를 진정으로 사랑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실력을 정정당당하게 평가받고 싶은 순수한 마음으로 대회에 참가해요. 바리스타 대회의 모든 참가자가 미호시 같은 마음가짐이었다면 불상사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고, 미호시가 탐정으로 활약할 일도 없었겠죠.
그러나 상금에 대한 욕심, 명예욕, 커피를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그렇기에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사연 등 수많은 미혹이 뒤섞여, 바리스타 대회는 본연의 목적을 잃고 엉망진창이 되고 말죠. 미호시가 자신의 장기였던 드립 커피 종목을 기권한 이유도 이 때문일 겁니다. 이미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어 버린 대회에서 우승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커피를 가장 사랑하고 존중하던 사람이, 커피를 잃고 싶지 않아 커피에 해서는 안될 짓을 저질러버리는 일련의 과정과 그 이면의 사연이 안타깝고 아이러니했어요. 나쁜 짓을 한 건 맞는데 그 심정이 이해는 된달까,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는 범인이더군요.
하긴 오카자키 다쿠마 글 속의 악역(?)들은 찌질하고 못났으면서도, 동시에 인간적인 공감과 연민을 자아내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들의 악행에 진저리가 처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워할 수만은 없달까요. 뭐, 살인이나 극악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기에 가질 수 있는 동정심이긴 합니다만.
거북이걸음처럼 느릿하게 진행되는 로맨스
그리고 아오야마와 미호시는 드디어 '포옹'이라는 단계까지 진도를 나갔습니다. 얘네가 만난 지 일 년이 넘었다는 건 무시하도록 합시다. 둘 다 워낙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성격이라 이해해 줄 수밖에요.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 수첩⟫ 시리즈는, 뒷 권으로 갈수록 이야기의 완성도가 높아져서 만족스러워요. 덕분에 빨리 다음 권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정말 당혹스럽게도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 수첩⟫ 4권은 이북(전자책, E-book)이 없네요. 5권은 있는데 말이죠. 4권 종이책은 출간된 적 있는 것 같지만 절판 상태고요. 한마디로 4권은 중고로 구해 읽을 수밖에 없어요. 아니 뭐 이런 황당한 경우가..? 일단 저는 4권은 건너 뛰고 바로 5권을 읽을 생각입니다. 출판사에서 4권 이북도 책임지고 출간해 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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