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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오카자키 다쿠마의 ⟪도연사의 쌍둥이 탐정일지⟫ 책 리뷰 (ft. 스포일러 있음,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 수첩 작가)

by 삶의파편 2022. 11. 30.

도연사의쌍둥이탐정일지책표지-마루에앉은쌍둥이남매의모습

오카자키 다쿠마 지음 | 민경욱 번역 | 소미미디어 출판 | 일본 소설 | 라이트노벨 | 미스터리/스릴러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 수첩⟫ 시리즈를 쓴 작가 오카자키 다쿠마의 또 다른 일상 미스터리물입니다. 커피점 탈레랑이 제목 그대로 교토의 고풍스러운 카페를 배경으로 한 탐정물이라면, 이 소설은 사찰을 배경으로 그곳에 사는 쌍둥이 중학생 남매가 탐정으로 활약하는 이야기예요. 작가가 사찰 집안 출신이라더니,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글을 쓴 것 같습니다. 

 

⟪도연사의 쌍둥이 탐정일지⟫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된 리뷰입니다.

 

도연사 사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일상 추리물

우리나라와 다른, 특색 있는 일본의 사찰 문화

이 소설은 도연사라는 사찰에서 생활하는 주지스님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다르게 스님도 결혼하고 자식을 낳을 수 있어요. 술과 고기를 먹을 수도 있고요. 이런 점이 한국 사람인 제 입장에서는 무척 특이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여하튼 이런 일본 고유의 사찰 문화 때문에, 도연사는 종교적이면서도 가족적인 공간입니다. 주지스님이면서 동시에 아버지이기도 한 구보야마 신카이와 그의 자식인 잇카이, 쌍둥이 남매 렌과 란이 함께 살고 있어요. 3명의 누나도 있지만 현재는 모두 결혼해서 절을 떠났고, 대신 먼 친척인 미즈키라는 아가씨가 가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사찰에 버려진 쌍둥이 남매

사실 렌과 란은 다소 특이한 이력을 지니고 있어요. 14년 전, 아이들의 어머니가 쌍둥이 남매를 절 앞에 버려두고 떠났거든요. 아버지 신카이는 그런 아이들을 사랑으로 품었고, 그래서 잇카이와 쌍둥이는 나이차가 많이 나는 남매가 된 거예요. 잇카이가 30살이니, 14살인 남매와 무려 16살 차이가 납니다. 

 

사찰 신도들이 지닌 일상적인 고민들을 해결하는 남매들

아버지 신카이와 형 잇카이가 운영하는 절 도연사에는 수많은 신도들이 찾아옵니다. 그들의 경조사를 도연사에서 도맡아 처리하곤 하죠. 때문에 본의 아니게 신도들에게 생기는 골치 아픈 일이나 고민거리를 상담하거나 해결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형 잇카이는 정이 많고 오지랖이 넓은, 사람 좋은 성격이에요. 그러다 보니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아버지와 달리, 신도들의 개인적인 문제에 저도 모르게 휘말리거나 뛰어들곤 하죠. 그러나 다소 덜렁거리는 성격인 데다 둔하기도 해서, 결국 일을 벌이는 건 잇카이지만 그걸 해결하는 건 동생인 렌과 란입니다.ㅋㅋ

 

장례식에서 조의금이 사라졌습니다. 어떤 이는 누군가 조의금을 훔쳤다고 주장하고, 다른 이는 애당초 조의금을 낸 적도 없다 합니다. 누구의 말이 맞을까요?

 

맛있는 매화가지 떡을 파는 가게가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 집의 손녀딸이 이상한 행동을 반복합니다. 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걸까요?

 

남편에게 거짓말을 한 부인이 있습니다. 남편은 부인의 불륜을 의심해요. 그녀가 거짓말을 한 건 분명하지만, 정말 바람을 피운 것일까요, 아니면 어떤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걸까요?

 

쌍둥이 남매는 이처럼 다양한 수수께끼를 탁월하게 풀어내는 총명한 아이들이지만, 답을 찾는 방식이 서로 무척 다릅니다. 그래서 렌이 헛다리를 짚으면 란이 맞고, 란이 틀렸다 싶으면 렌이 맞곤 하죠. 답에 이르기까지 렌과 란의 추리가 엎치락뒤치락하는 과정이 제법 볼만합니다. 둘의 추리 중 무엇이 맞을까 추측하는 재미가 있달까요.

 

대조적인 성격의 쌍둥이와 그들의 뛰어난 추리력

쌍둥이는 성별이 달라요. 렌은 남자아이, 란은 여자아이입니다. 둘은 자신들이 절에 버려진 아이라는 이력을 잘 알고 있어요. 그래도 좋은 사람들에게 거두어져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기에 비뚤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좋은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친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상처는 남았어요. 둘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상처를 극복하려 해요. 그 가치관의 차이가 쌍둥이의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렌은 세상사나 인간에 대한 시각이 비관적입니다. 친부모도 아이를 버리는 세상이니만큼, 입버릇처럼 "절 옆에는 귀신이 산다."라고 말하며 인간의 악의를 경계하곤 하죠. 한마디로 렌은 성악설을 믿는 종류의 사람입니다. 매사에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성격이에요. 때문에 그가 하는 추리도 인간에게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쪽으로 치우치곤 합니다.

 

란은 렌과 정반대 성격이에요. 밝고 따뜻한 성정에 세상사를 항상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석합니다. 친부모가 자신들을 버렸지만, 그만큼 따뜻하고 훌륭한 사람들의 손에서 자라는 행복을 누렸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거죠. 때문에 란은 인간의 선의에 대한 믿음이 있어요. 그래서 란이 하는 추리는 렌과 반대로, 인간의 선의에 초점을 맞추곤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사실 수많은 악의와 선의가 뒤얽힌 곳이죠. 나쁘지만도 않고 좋지만도 않습니다. 그래서 렌의 추리가 엉뚱하다 싶으면 란이 맞고, 란의 추리가 틀렸다 싶으면 렌이 맞아요. 마치 음양의 조화처럼요.

 

쌍둥이의 트라우마 극복기

쌍둥이가 친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상처를 치유하는 마지막 에피소드가 피날레를 장식합니다.

마지막 이야기의 주제는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쌍둥이 남매는 정말 부족함 없이 사랑받으며 자랐어요. 그럼에도 친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은 가슴 깊이 트라우마로 남았습니다. 렌은 냉소적인 언사를 통해 그런 심경을 겉으로 자주 표현해 왔어요. 그러나 긍정적인 줄로만 알았던 란조차 그 상처를 지울 수 없는 각인처럼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형 잇카이는 큰 충격을 받게 되죠. 아무리 자신이 사랑을 주어도, 남매가 친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은 돌이킬 수 없으니까요.

 

잇카이의 꿈속에 나타난 어머니

그러나 잇카이의 꿈 속에 나타난 한 여성의 사연을 통해 두 남매는 심경의 변화를 겪게 됩니다.

 

그 여성은 평생 외롭게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아기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요. 심지어 죽고 나서도 잇카이의 꿈에 나타날 만큼. 

 

위기에 처한 그녀의 아기를 구하기 위해 발로 뛰며, 두 남매는 자신들의 어머니에게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되돌아보고 그녀를 용서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은 버림받은 아이라는 부정적인 족쇄에서 벗어나고자 하죠.

 

다음 시리즈를 위한 풀리지 않은 떡밥

1권으로 완성된 이야기이지만 아직 풀리지 않은 떡밥이 많아 보입니다.

형 잇카이의 연애 사정은 어떻게 될는지 - 아무리 봐도 미즈키와 플래그가 선 것 같은데 - 두 남매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더 풀릴 것인지 궁금해요.

 

또 새로운 식구가 탄생했고, 다이손이라는 전학생 이야기도 잔뜩 변죽만 울리고 정작 나온 게 없어서 앞으로 할 얘기가 많아 보입니다. 제가 보기엔 작가가 다음 이야기를 염두에 두고 남겨둔 떡밥이라고 봐요. 

 

개인적으로는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 수첩⟫ 시리즈가 더 재미있어요. 그러나 탈레랑 시리즈가 뒷권으로 갈수록 발전하듯, 이 도연사 쌍둥이 시리즈도 다음 이야기가 더 흥미진진할 가능성이 엿보이거든요. 1권은 캐릭터와 기본 배경을 구축하는 과정이랄까요. 그래서 꼭 2권이 나와 줬으면 하고 바라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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