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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다시 만난다면 당신이 내려준 커피를,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 수첩 1⟫ 북 리뷰 (ft. 스포일러 있음, 커피 추리 미스터리)

by 삶의파편 2022. 11. 24.

커피점탈레랑의사건수첩1권표지여성바리스타일러스트
출처-교보문고

오카자키 다쿠마 지음 | 양윤옥 번역 | 소미미디어 출판 | 일본 장르 소설 | 추리/미스터리/스릴러

 

저에게 굉장히 애매한 느낌을 선사한 소설입니다. 좋다고 하자니 걸리는 게 많고, 나쁘다고 하자니 장점도 많은 글이었거든요. 결국 다음 시리즈도 계속 읽어 보기로 결정했어요. 마뜩잖던 초반 서술이 뒤로 갈수록 나아졌다는 데 희망을 걸어보려 합니다.

 

이하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 수첩 1권'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된 리뷰입니다.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나만의 단골 카페

누구나 한 번쯤 꿈꾸지 않나요? 다른 이들은 모르는, 나만이 알고 있는 숨겨진 보석 같은 카페나 맛집과의 조우. 그래서 친구나 지인에게 소개하며, 이런 훌륭한 음식점을 발굴해낸 나의 탁월한 안목을 자랑할 수 있는 장소.

 

'커피점 탈레랑'은 남자 주인공 '아오야마'가 꿈에 그리던, 환상의 커피를 맛볼 수 있는 카페입니다. 전통의 도시 교토 골목 깊숙이 숨어 있는, 작고 소박한, 아는 사람만 아는 조용한 곳이죠.

 

아오야마는 드세고 무서운 여자 친구를 피해 도망치다가 우연히 이 카페를 발견했어요. 잠시 쉬어가기 위해 별다른 기대 없이 주문한 커피 한 잔이 아오야마의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좋은 커피란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겁고, 천사처럼 순수하고, 그리고 사랑처럼 달콤하다'

 

는 말은 '샤를 모리스 드 탈레랑'이라는 프랑스 백작이 남긴 커피에 대한 유명한 격언입니다. 아오야마는 이 문구를 접한 후 그런 커피를 만나길 고대했지만, 커피의 쓰디쓴 맛을 새삼 실감할 뿐이었죠.

 

사실 저 문구의 '달콤함'은 에스프레소에 들어간 설탕을 가리키는 것이기에, 순수한 커피에서 달콤함을 느끼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커피점 탈레랑'에서 아오야마는 자신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바로 그 '최고의 커피'를 만나게 된 거예요!

 

이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낸 주인공은 '기리마 미호시'라는 평범한 여성 바리스타입니다. 그녀의 어리숙한 외모만 보고 서빙하는 아르바이트생이라 판단했는데, 사실은 더할 나위 없이 능숙한 커피 전문가였던 겁니다.

 

그러나 그녀의 특출함은 커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예리한 관찰력과 추리력으로 일상 속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탐정으로서의 능력도 뛰어났거든요.

 

커피 향 물씬 풍기는 일상 속 수수께끼 풀이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 수첩⟫은 커피점 탈레랑을 배경으로, 두 주인공 '기리마 미호시'와 '아오야마'가 일상 속 수수께끼를 풀어간다는 플롯을 지닌 일종의 코지 미스터리 소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보통 수수께끼를 내는 사람은 '아오야마'이고, 그 수수께끼를 멋지게 풀이해 내는 탐정은 '기리마 미호시'예요. 커피 원두를 곱게 갈며 문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 그 해답을 찾으면 '잘 갈아졌어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대사는 일종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습니다.

 

살인 같이 심각하고 묵직한 내용이 아니라, '저 여성 손님은 왜 다른 사람의 우산을 가져갔을까?'라거나 '사촌 여동생의 애인은 바람피우고 있는 것일까?'와 같이 평범하지만 궁금하기 짝이 없는 일상 속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내용이에요. 때문에 하드보일드 스릴러 같은 긴장감은 없지만, 커피 향 물씬 풍기는 카페에서 평온하고 잔잔한 휴식을 취하는 듯한 재미가 있습니다.

 

이 소설은 아오야마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하기 때문에, 아오야마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됩니다. 서술적 트릭이 들어가 있거나 중요한 진실을 일부러 얘기해주지 않을 때가 있어요. 이 함정을 잘 피해 가며 사건의 진실을 파악해내는 것이 기리마 미호시이고, 독자 또한 함께 추리하며 이야기를 따라가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사실 소설 뒷부분의 에피소드에서는 지독한 스토커 범죄자가 등장하여 제법 무섭고 심각한 분위기를 띄기도 합니다. 하지만 무거운 주제를 약간의 감동과 용기, 익살과 재치를 통해 돌파하여 해피엔딩을 맞이하게 되지요.  

 

아직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두 남녀 로맨스의 향방

수수께끼 풀이 못지않게 흥미진진한 게 바로 주인공 두 사람이 맺어질 것인지의 여부입니다. 서로에게 친구 이상의 호감을 가지고 있는 건 분명하고, 그걸 두 사람도 서로 알고 있어요. 

그러나 여주인공 기리마 미호시는 4년 전 힘든 일을 겪었습니다.

스토킹 가해자는 이에 대해 '그녀가 내 마음의 문을 열어 놓고 무책임하게 상처 줬다.'라는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죠.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그녀의 인간적인 친절과 호의를 제멋대로 착각하고, 자신의 마음이 거절당하니 자존심 상해 범죄를 저질렀다, 는 문제에 불과해요. 그걸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는 게 참 기가 차고 한심하더라고요. 

"이 녀석, 아주 그럴싸한 소리를 늘어놓지만, 한마디로 바람맞은 것에 꽁해서 이 짓거리를 하는 거잖아. (중략) 별 내용도 없는 주제에 자존심만 높아서 저를 차버린 여자를 용서하지 못하는 거야."

 

아오야마의 옛 연인 '도라야 마미'가 한 말이 스토커 범죄의 본질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찌질한 인간 때문에 기리마 미호시는 무려 4년을 고통받아야 했고, 기껏 아오야마에게 품은 호의도 평범하게 발전시키지 못해요. 그래서 아오야마와 기리마 미호시의 관계는 아직 미정입니다.

 

그러나 커피라는 공통 관심사에 대한 두 사람의 어마어마한 열정과 애정, 수수께끼 풀이에서 보여주는 환상의 합, 서로에 대한 진정한 배려를 보노라면, 이런 인연을 놓치는 건 인생에 있어 큰 손해라는 생각이 들게 되거든요. 그래서 두 주인공을 응원하는 마음에 이 시리즈를 계속 읽지 않을 수가 없네요.ㅋㅋ

 

단점

위에서 이 소설의 매력 포인트에 대해 언급했다면, 이제 거슬렸던 부분, 즉 단점에 대해서도 적어볼까 합니다.

 

소설 초반, 아오야마의 서술이 지나치게 장황해요.

물론 제가 워낙 만연체를 싫어하긴 합니다. 소설의 서술방식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에 이런 제 취향이 반영되었을 거예요.

 

그렇더라도 저의 호불호와 상관없이, 잘 쓴 만연체 문장은 분명 존재하고 저도 그걸 알아볼 수 있거든요. 그런데 이 글은 쓸데없이 장황한 미사여구가 많아요. 초반부를 읽으며, 이 글을 계속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을 정도로. 다행스럽게도 뒤로 갈수록 이런 서술이 나아지더군요. 그래서 글의 마지막까지 완주할 수 있었어요.

 

두 번째, 커피에 대한 정보의 나열이 지나칩니다.

좋게 말하면 배경지식이 풍부한 거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독자인 제 입장에서는 작가가 '내가 커피에 대해 이렇게 많이 조사하고 공부했어. 이걸 안 써먹으면 아깝잖아.' 하는 것 같았달까요. 이런 정보는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야 지루하지 않아요. 그런데 이 소설은 커피 강의를 들으며 공부하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이런 정보의 나열 또한 뒤로 갈수록 줄어들어 참을만합니다.

 

이처럼 거슬리는 부분이 있음에도, 이야기가 지닌 장점이 단점을 능가해서 계속 다음 시리즈를 읽을 생각입니다. 기리마 미호시와 함께 일상 미스터리를 푸는 재미가 제법 쏠쏠해요. 또 커피점 탈레랑이 풍기는 편안한 휴식공간으로서의 매력도 상당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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