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국 지음 | 유유 출판 | 인문/독서/글쓰기
제목 그대로 일기 쓰는 방법에 대한 글이지만 딱딱하고 지루한 내용이 아닙니다. 일기 쓰기에 대해 학문적/원론적 접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저자 스스로의 경험과 다른 유명 작가들의 일기를 예시로 들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이라 좋았습니다. 가볍게 술술 읽히는 에세이 같은 책이랄까요.
15년 차 일기 쓰기 프로의 '일기 쓰는 법'
저는 나름 1년 가까이 꾸준히 일기 쓰기에 성공했고 그게 현재 진행형이기도 한, 자칭 프로 일기러입니다. 일기 쓰기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 책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더라고요. 다른 사람은 일기를 어떻게 기록하는지, 제가 고치거나 배울 만한 점은 없는지 궁금한 마음에 읽게 되었어요.
저자는 일기를 쓴 지 15년이나 된 일기 쓰기 프로입니다. 기자, 편집자로 오래 활동하셨고 현재 자그마한 책방을 운영 중이라고 합니다. 이분에 비하면 저는 일기 쓰기 초보에 불과하네요.
저자가 일기를 쓰게 된 계기가 인상 깊었는데, 저의 일상에 대한 사소하고 하찮은 기록이 훗날 저를 지켜주는 방패가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닫고 놀랐습니다.
훌륭한 작가들의 일기
제가 이 책에서 제일 좋았던 건, 훌륭한 작가들의 다양한 일기를 구경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뛰어난 작가는 일기조차도 그렇게 멋들어지고 우아하게 쓰더라고요. 일기 자체가 하나의 문학작품 같아요.
물론 작가 본인은 자신의 일기가 이렇게 만천하에 공개되는 걸 절대 바라지 않았을 거라는 점이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지만. 저에게는 저런 내용으로 혹은 형식으로 일기를 쓸 수도 있구나, 하고 벤치마킹(?)의 좋은 사례가 되어주었달까요.
일기는 글쓰기의 씨앗이다
글쓰기에 대한 욕망은 있지만 글쓰기가 힘들게 느껴진다면, 그 첫 시작으로 일기를 쓰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일기의 독자는 나 자신이기에 잘 써야만 한다는 압박감이 없어요. 솔직하고 자유롭게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을 수 있죠. 난이도가 낮은만큼 글쓰기의 출발점으로 삼기 좋아요. 그렇게 매일, 꾸준하게 한 문장이라도 쓰면 글 쓰는 행위를 습관화할 수 있고,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이 줄어들게 됩니다.
이건 저도 직접 경험한 바이기에 크게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1년 가까이 일기를 쓰니 자연스럽게 블로그 포스팅에 대한 두려움도 많이 줄었거든요. 예전에는 포스팅을 하고 싶어도 글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는데, 이젠 일기의 연장선이라 생각하고 좀 더 편하게 접근하게 됐어요.
글이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작가라 할지라도 여러 번의 퇴고 과정을 거쳐야 멋진 작품이 탄생합니다. 뛰어난 작가도 이러한데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겠어요. 수많은 연습과 시행착오를 경험해야만 글쓰기 실력이 늘어나는데,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이 크면 연습조차 하지 못하죠.
그렇기에 일단 글쓰기에 대한 부담부터 줄이는 마인드 세팅이 필요한데, 일기 쓰기가 그에 큰 도움이 됩니다. 게다가 일기 쓰기가 확장되면 책이나 블로그 포스팅의 소재가 되기도 하지요. 그렇기에 일기는 다양한 글쓰기에 대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씨앗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기는 '자기'가 드러나는 솔직한 기록이다
일기는 자신의 일상에 대한 기록입니다. 다만 신문이나 뉴스에서 무미건조하게 사건을 기록하는 보도문 같은 일기를 쓰는 것은 저자도, 다른 많은 작가들도 추천하지 않습니다. 일상을 기록하되, 그에 대한 자기 자신의 느낌, 생각, 사유를 솔직하게 남기는 데 일기의 의의가 있습니다.
일기는 "내 영혼의 기록을 꼼꼼히 적는 일"이라는 페소아의 말마따나, 거짓과 위선을 걷어내고 자기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는 거울이 되곤 합니다.
저 또한 시간이 흐른 뒤에 과거의 일기를 다시 읽어보면, 과거의 제가 굉장히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스스로 모르던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혹은 일상이 똑같이 반복되는 듯 보이지만 사실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변화하고 있고, 그 변화나 성장을 실감하게 되는 게 과거의 일기라는 생각도 듭니다.
다만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되, 정제할 필요가 있다는 부분에서 개인적으로 많이 찔리더라고요. 왜냐하면 전 제 일기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쓸 때도 있거든요. 이럴 땐 격해진 감정을 그대로 일기에 쏟아버리기 때문에 나중에 다시 읽으면 굉장히 쪽팔려요.
그런데 덕분에 스스로의 못난 모습을 보며 반성하고 성찰하게 되기도 하니까,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ㅋㅋ 일기를 통해 자기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거든요.
일기를 많이 쓰면 문구 덕후가 될 수밖에 없다
일기를 오랫동안 써온 다른 분들의 경험담도 실려 있는데, 일기를 많이 쓰다 보면 문구 덕후가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인가 봅니다. 그분들이 쓰는 노트나 필기구, 기타 장비들에 대한 이야기가 재미있었어요. 저와 겹치는 아이템이 나오면 괜히 반갑고 내적 친밀감 느껴졌어요. 저도 일기를 쓰기 시작한 계기가 제가 좋아하는 만년필을 더 많이, 자주 사용하고 싶어서였거든요.
결론
저자는 어른에게 일기 쓰는 법을 알려주는 책을 찾기 힘들어, 이 책을 직접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미 일기를 잘 쓰고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을 일은 없을 거라고 적으셨는데, 저는 오히려 일기를 꾸준히 잘 쓰고 있는데도 제법 재미있게 봤어요.
책은 책을 부른다고, 저자가 추천하는 저서들도 재미있어 보이는 것이 많아 위시리스트에 올려놨습니다. 더 많이 읽고 써야겠다는 의욕이 샘솟게 되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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