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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히가시노 게이고 '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 책 리뷰 (스포 있음)

by 삶의파편 2022. 10. 14.

블랙쇼맨과이름없는마을의살인책표지-빨간색
이미지출처-교보문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최고은 번역 | 알에이치코리아 출판 | 일본 소설 | 미스터리/스릴러 장르

 

소설 '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2020년 11월 발표한 비교적 최근의 작품입니다. 천재적인 마술사지만 괴팍한 삼촌 '다케시'와 아버지를 살해한 범인을 찾으려는 조카 '마요'의 합동 수사,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동창생들의 비밀이 흥미진진한 글입니다.

 

 

줄거리 

서른 살의 주인공 마요는 코앞에 닥친 결혼을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갑자기 걸려온 경찰의 전화로 아버지의 죽음을 전해 듣고, 학생들에게 널리 존경받는 교사였던 아버지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진 말이죠.

 

슬픔을 추스를 새도 없이, 오랜만에 고향 집으로 내려가 경찰의 수사에 협조하고 있는데 갑자기 요란스럽게 등장한 괴짜 삼촌 다케시. 그는 한때 미국에서 잘 나가던 천재적인 마술사였으나, 지금은 일본에서 조용히 바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워낙 독특한 마이웨이 성격이라 마요의 가족과도 별다른 교류 없이 지내던 그가 아버지의 죽음을 알아채고 고향 집으로 돌아온 겁니다.

 

삼촌 다케시는 경찰들을 신뢰하지 않아요. 경찰이 범인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잡고 검거하기 전까지, 유족들은 마냥 손가락 빨며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카 마요와 함께 독자적인 수사를 펼쳐 나가기로 하죠. 경찰이 할 수 없는 일을 이 둘은 할 수 있으니까요. 바로 마을 사람들의 경계를 허물어 범인의 단서를 찾는 것.

 

매력적인 캐릭터의 등장 - 괴짜 천재 마술사  

천재적인 마술사답게, 다케시는 경찰들의 혼을 쏙 빼놓고는 수사 자료를 몰래 빼내곤 하는데 그게 정말 웃기고 재미있습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유쾌하고 재미난 분위기로 글이 전개되는 건, 바로 이 캐릭터 덕분입니다.

 

심지어 추리능력도 뛰어나서,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의 포와로나 마플 여사, 혹은 셜록 홈스 못지않은 추리력을 발휘하죠. 그야말로 성격 나쁜 것만 빼면 못하는 게 없는 만능 사기캐릭터에 가깝습니다. 조카 마요는 조수 왓슨 같은 역할이고요. 개인적으로 삼촌 캐릭터가 정말 매력적이라, 그가 등장하는 추리 시리즈물이 나와 줬으면 싶더라고요.

 

코로나로 무너진 관광 마을과 변해버린 친구들의 초상

코로나로 인해 큰 타격을 받은 관광도시의 실정을 생생하게 표현해 현실감이 있는 점도 좋았습니다.

 

범인을 잡기 위해 수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친구들 각각의 사연은 코로나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관광업으로 먹고사는 마을에서 경영난에 처한 자영업자 친구, 관광 사업에 투자했다가 코로나 여파로 사업이 철회되어 곤란에 처한 사업가 혹은 은행원 친구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금전적 도움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혹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줄 알았으나 별거 중인 친구도 있습니다. 과거 학창 시절 존재감 없이 무시당했지만, 지금은 가장 돈을 잘 버는 유명인사가 되어 위상이 달라진 친구도 있고요.

 

이처럼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인간관계와 그들의 삶에 대한 묘사 또한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끊임없이 변화하는데, 그 변화가 달갑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과거의 추억을 자주 꺼내보는 것 같아요. 

 

존경받는 아버지는 왜 살해당했을까

이 소설의 최고 미스터리는 바로 '존경받던 교육자인 아버지가 왜 살해당했는가'입니다.

 

혹시 아버지에게 숨겨둔 어두운 비밀이 있었던 걸까요? 그러나 다케시 삼촌과 마요가 수사를 하면 할수록, 아버지는 학생들에게 진정으로 존경받고 사랑받는 스승이었음이 드러납니다. 

 

혹시 금전적인 이유 때문일까요? 그러나 아버지는 돈이 궁하지는 않았지만, 돈이 많은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의 치명적인 약점이 될 비밀을 알고 있었을까요? 이것이 정답입니다.

 

훌륭한 인품의 아버지는 여러 제자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문제를 해결해주는 상담자 역할을 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사적인 비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는데, 결국 이 때문에 살해당한 겁니다. 그 비밀은 과거에 죽은 마요의 친구와 관련되어 있었고, 다케시와 마요는 그 과거를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반전은 없는, 지나치게 뻔한 결말

결국 범인은 삼촌 다케시가 파 놓은 함정에 걸려 자신의 범행을 스스로 폭로하고 맙니다. 그런데 그게 그다지 놀랍지 않아요.

 

이 소설은 추리소설이지만 '범인이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너무 뻔하거든요. 추리소설을 많이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수상쩍게 생각할법한 인물이 범인이에요.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것보다 중요한 건 '왜 아버지는 살해당했는가'입니다. 즉 과거 죽은 친구와 연결되어 있는 비밀, 그것에 대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이야기가 전개되는 겁니다.

 

위에서 이미 언급했듯, 삼촌 다케시는 천재적인 마술사이고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합니다. 그래서 추리하는 과정이 재미있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가 아닌가 싶은 거예요. 모든 난관을 '삼촌 다케시는 천재적인 마술사니까 처리할 수 있다'는 식으로 해결해 버리거든요. 마술사 삼촌 덕택에 추리가 재미있고 편해졌지만, 동시에 현실성 떨어지게 느껴지는 부분도 많았습니다.

 

범인의 정체가 시시하고 지나치게 만능인 삼촌 때문에 긴장감이 떨어져서, 그동안 제가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중에서 중간 정도의 재미라고 평가하게 됩니다. 그래도 읽은 시간이 아깝지는 않았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은 늘 평균 이상의 재미를 주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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