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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히가시노 게이고 '브루투스의 심장' 책 리뷰 (스포 있음)

by 삶의파편 2022. 10. 13.

히가시노게이고-브루투스의심장-책표지
이미지출처-리디북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 | 일본 소설 | 미스터리/스릴러

 

《브루투스의 심장》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1989년 발표한 정통 추리 소설입니다. 3명의 남자가 한 여자를 죽이고 완전범죄로 은폐하기 위해 서로의 알리바이 조작을 계획하지만, 오히려 살인자가 피해자가 되어버리는 파격적이고 참신한 설정의 작품입니다.

 

 

성공을 향해 질주하는 다양한 인간군상

주인공 스에나가 다쿠야의 어린 시절은 불행했습니다.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무능하고 무책임하며 폭력적인 사람이었거든요. 어른들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자라며 어린 나이에 일찍 철든 주인공은, 또래보다 냉철한 이성과 자기 절제력을 발휘해 뛰어난 인재로 성장합니다.

 

흙수저 출신으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고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당당히 취업한 주인공은 직장에서도 돋보이는 능력과 무정한 성품을 바탕으로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성과지만 그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더 큰 성공을 꿈꿉니다. 자신의 불행했던 과거를 보상할 만큼 높은 지위와 부를 손에 넣고 싶었거든요. 

 

그가 성공으로 가는 다리로 삼은 것은 대기업 오너의 둘째 딸입니다. 대기업 오너는 자신이 후계자로 삼은 아들을 보좌할 인재를 찾고 있습니다. 그 인재를 둘째 딸의 남편, 즉 데릴사위로 삼아 자기 가문의 영향력을 굳건히 할 심산이죠. 그래서 주인공은 오만하고 제멋대로인 둘째 딸의 마음속에 들어가 그녀의 남편이 되기 위한 전략을 짜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가 둘째 딸의 남편이 되기 전에 해결해야 할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어요.

 

바로 주인공의 아이를 임신한 아마미야 야스코라는 여성의 존재입니다. 그녀는 같은 회사 직원으로, 주인공이 오너와 그 딸을 공략하기 위한 정보를 물어다 주는 협력자이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육체적 관계가 있었지만 서로 사랑의 감정을 느낀 것은 아니었죠.

 

다쿠야는 야스코가 가져다주는 정보와 육체적 쾌락이 필요했을 뿐입니다. 야스코는 자신의 풍족한 미래를 위해, 미래 오너의 데릴사위가 될 수도 있는 다쿠야의 아이를 보험으로 삼고자 한 것이고요. 심지어 그녀는 태연하게 아이의 아버지가 다쿠야 하나가 아니라 다른 남자들일 가능성도 내비치죠. 

 

궁지에 몰린 다쿠야가 야스코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한 남자가 그에게 접근합니다. 바로 대기업 오너의 아들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야스코는 대기업 오너의 아들과 다쿠야, 그리고 또 다른 데릴사위 후보 세 남자 모두와 문어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거예요. 결국 세 남자는 자신들의 안전한 미래를 위해 아마미야 야스코 살인을 공모하게 됩니다.

 

위의 줄거리를 통해 알 수 있듯, 《브루투스의 심장》은 따뜻한 휴머니즘을 느낄 수 있는 종류의 글은 아닙니다. 각자의 성공을 위해 극단의 이기주의를 보여주는, 도덕관념 엉망진창인 인물들이 대부분이거든요.

 

그런데 사연 없는 사람 없다고, 각자의 성장과정을 살펴보면 그들 나름대로 성공과 부에 집착할만한 사정이 있긴 합니다. 그래서 독자로서 참 딜레마였어요.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비호감인데, 또 한편으로는 다들 짠한 측면이 있지 뭡니까. 싫다가도 안쓰럽고, 살인 공모의 이유도 참 찌질하고 못나 보이는데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하고. 이런 다양한 인간군상을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스토리는 기나긴 살인 대장정을 위한 서론에 불과합니다. 세 남자는 과연 살인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그 살인이 성공하길 빌어야 할까요, 빨리 발각되길 빌어야 할까요?

 

성공적인 살인을 위한 3인 시체 릴레이

완벽 범죄를 꿈꾼다면 알리바이 조작이 필수죠. 경찰이 처음부터 3명이나 되는 사람이 한 여자의 살인에 가담했을 거라고 추정하기는 어려울 테니, 그 점을 이용하여 서로가 서로의 알리바이 조작을 돕기로 합니다. 

 

첫 번째 남자가 살인을 하고, 둘째 남자가 시체를 운반하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남자가 그 시체를 또 다른 곳까지 운반해 처리하기로 한 거죠. 그러면 살인 시간과 시신을 운반하는 시간 사이에 편차가 생기게 됩니다.

 

예를 들어, A가 살인을 저지른 시간에는 B와 C의 알리바이가 보장되고, B가 시신을 운반하는 시간에는 A와 C의 알리바이가 있으며, C가 시신을 처리하는 시간에는 A와 B의 알리바이가 보장되는 거죠. 물론 경찰이 세 사람의 공모를 눈치채면 이 트릭도 깨지게 되겠지만, 표면적으로 세 사람은 그리 친밀한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들통날 확률이 낮습니다. 

 

뒤바뀐 시체

세 사람은 날짜를 정해 살인을 결행합니다. 주인공 다쿠야는 운이 좋게도 제일 쉬운 두 번째 역할을 맡게 됩니다. A가 죽인 야스코의 시신을 차에 싣고 C에게 전달하죠. 그런데 그 과정에서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다쿠야가 차에 싣고 온 시신이 살인의 목표였던 여자 야스코가 아니라 대기업 오너의 아들, 즉 A였던 겁니다. 

 

시신이 담요로 감싸여 있어 그게 야스코가 아니라 A라는 사실을 몰랐던 다쿠야와 C는 기겁합니다. A가 야스코를 죽이기로 했는데 도리어 그가 살해당하고 만 것이죠. 심지어 야스코는 멀쩡하게 살아있어요. 이제 다쿠야와 C는 A를 죽인 살인범이 누구인지 알아내야 하고, 범인이 갖고 있는 그들 세 사람이 야스코 살인을 공모했다는 증거인 연판장도 회수해야 합니다. 또 야스코도 처리해야만 하죠.

 

총평

이 과정이 굉장히 숨 가쁘고 흥미진진하게 전개되어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이야기는 대개 주인공 다쿠야의 시점에서 전개되기 때문에, 다쿠야가 나쁜 놈인데도 불구하고 살인 공모를 걸리면 어쩌지 하는 염려, A를 죽인 범인에게 다쿠야도 살해당할 수 있겠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더군요. 사냥꾼이 도리어 사냥감이 된 셈입니다.

 

게다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들 세 사람과 야스코 외에 많은 캐릭터가 추가로 등장하고, 그들 모두가 의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혼란스러운 상황이지만, 사실 결말까지 읽고 나면 히가시노 게이고가 소설의 초반부터 충실히 떡밥, 즉 복선을 촘촘하게 깔아놓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세를 위해 못할 것이 없는, 그야말로 로봇(그 로봇의 이름이 '브루투스'입니다)만큼 무정한 주인공 다쿠야. 그리고 각자 나름의 사정으로 이기적인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표현해서, 소설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논스톱으로 빠르게 달릴 수 있었어요.

 

개인적으로 범죄 동기와 전개, 트릭 등의 추리소설로써의 재미뿐만 아니라, 드라마적인 스토리 자체가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주인공을 이처럼 뻔뻔하고 나쁜 놈으로 설정한 것도 신선했고요.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고, 기계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인간 근로자들의 모습이 시사하는 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로봇에 대한 사고방식이나 묘사가 80년대 기준인 만큼 다소 올드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2022년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도 많아요. 무엇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오락적인 재미' 측면에서, 아직까지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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